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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들이 장관이다. 강렬한 햇볕과 비바람을 막아주던 잎사귀를 톡톡 떨구어 내며 애지중지 키워온 금빛 옥동자들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듯 하다. 대풍년이다. 가지가 휘고 부러질 정도로 많이 달리기도 하고 색깔도 곱다. 감나무 아래를 걷는 자체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당나라 때 어느 시인은 “서리 물든 단풍 봄꽃보다 더 고와라(霜葉紅於二月花)” 라고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찬탄했는데 우리 고장은 집집마다 또 도로마다 즐비한 감나무들까지 가세해 늦가을의 정취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요즈음의 계절이 1년 중 고향의 멋과 향수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감고을 우리 영동 사람의 추억 속에는 누구나 집 주변에 몇 그루의 낯익은 감나무가 있고, 가을걷이에 바쁘신 어머니의 모습 또한 그 추억 속에 늘 함께 하고 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감을 따지만, 역시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며 명작으로 재탄생된다. 가을 소풍가기 하루 이틀 전쯤에는 약간 덜 익은 감을 따 감잎과 함께 항아리에 넣고 뜨거운 물을 넣은 후 뚜껑을 덮고 이불로 폭 싸두어 익게 했다. 감을 ‘삭힌다’고 했는데 그러고 나면 감의 떫은 맛이 없어지고 먹기에 좋은 맛있는 단감이 만들어진다. 어머니는 가을 소풍 때면 그 삭힌 감 몇 개와 밤과 계란과 김밥을 정성스럽게 싸주셨는데 어려웠던 시절 참으로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이었던 것 같다. 또 어머니는 감을 칼로 일일이 깎아 말려 곶감을 만들고, 그 껍질도 버리지 않고 잘 말려서 간식거리로 만드시곤 했다. 잘 익은 감들은 나무 궤짝이나 큰 독에 깨끗한 볏짚을 깔며 차곡차곡 쌓아두어 홍시를 만드신다. 귀한 홍시다 보니 한겨울 손님이 오시기라도 하면 그 덕에 자식들도 한두 개씩 맛을 보곤 했다. 동짇달 긴 겨울 밤에 어머니께서 내놓은 살짝 얼은 홍시를 조금씩 베어먹노라면 그 맛이 얼마나 시원하고 좋았는지 모른다. 설탕과 인공향료로 범벅이 되어 입만 자극하는 요즈음의 아이스크림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비교 자체가 대자연이 빚어내고 어머니의 정성이 곁들어진 홍시에 대한 모독이 될 듯 싶다. 곶감은 감의 효능을 가장 오래 유지토록 해주고 당도를 높여주는 최종 걸작품이다. 적당히 말려 집안 어딘가 넣어두었다가 제사 때나 특별한 용도로 사용한 참 귀한 과일이다. 생각해보면 냉장고도 저온창고도 없던 시절 홍시며 곶감이며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보관 유지를 잘 하셨는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오면 비젖을세라 / 험한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 하 략 ........ 7,8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나훈아 씨가 작사․작곡한 “홍시(울 엄마)” 노래가사의 일부이다. 2절까지 된 노래가사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이것저것 어쩌면 그렇게 잘도 그려냈는지 역시 큰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기도 한 것은 젖가슴 내주시던 엄마의 모습까지 기억하다니 나훈아는 역시 천재 가수인 모양이다. 아니면 어머니의 헌신적 삶을 골고루 표현하기 위한 약간의 과장이 가미되었으리라. 하여간 그의 고향 집 뜰에도 감나무가 있었고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셨던 어머니가 계셨던 것 같다.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 노래를 들어도 어머니가 절로 생각난다. 자식을 위해 온갖 정성을 쏟고 온갖 희생을 감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리 7080세대에게는 ‘홍시’ 하면, 어머니가 그리워지고 또 나훈아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붉은 홍시가 눈에 가득 들어오는 요즈음의 계절은 나훈아의 ‘홍시’ 노래를 굳이 듣지 않아도 어머니가 절로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빨간 감이 탐스럽게 매달린 감나무를 보며 어머니와 함께 했던 아름다웠던 추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잠시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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