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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학을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다. 물론 집에서 대부분 사이버로 강의를 듣지만 방학동안 학교에서 만난 그녀는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화끈해서 금방 친해졌다. 남편이 뭐하냐는 말엔 그냥 싱긋 웃고말더니 아이가 몇이냐는 말엔 “셋!”이라고 힘차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낳아 너무 힘들게 키웠던 기억이 남은 나는 셋이란 말에 깜짝 놀라며 “너 근력도 좋다, 애 셋을 두고 공부까지 하니 슈퍼우먼이다야”. 하고 감탄했다. 언제나 힘든 내색없이 씩씩하게 공부하는 그녀를 보며 ‘남편이 돈 잘 벌어 편안하고 여유있는 환경인가보다’ 고 생각했다. 우린 출석수업이 없는 달에도 가끔 만났다. 피차 주부인데다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만나면 즐겁고 유익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친구 집에 가게 되었다. 청소가 안됐노라며 굳이 다음에 오라고 만류했지만 왠지 나는 그 친구 집에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집은 상상이 안될만큼 허름했다. 13평 낡은 아파트는 벽지가 여기저기 떨어져나갔고 장롱은 문짝이 떨어져 이불이 곧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난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친구는 밝게 웃으며 “야 우리집 웃기지!”하며 남 얘기하듯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하며 구김살 없이 인사하는 아이들은 어디 캠프로 놀러온 아이들처럼 활발했다. 안쓰러워하는 내가 더 멋쩍어서 애써 웃어보였지만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끓여온 라면을 그녀의 딸들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은 연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미나게 얘기하며 웃어댔고, 친구 역시 캠프에 놀러온 선생님처럼 “응 그래, 그게 영어로 뭔데? 응 그렇구나, 야 우리 딸 똑똑하다!” 하며 딸들의 기분을 살려주었다.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까지 덩달아 전염되는 기분이었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친구는 스치듯 자기이야기를 했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집을 날렸고, 지금 남편은 이른 새벽에 나가 공사현장에서 일하지만 재기를 위해 밤마다 뭔가를 배우러 다닌다는 것. 빚이 남아 돈은 모두 빚 갚는데로 나가기 때문에 생활은 엉망이지만 배움과 희망과 의지가 있으니 반드시 일어설 거라는 것. 아이들에겐 지금 ‘가난하게 사는 삶’이란 프로젝트 실험을 하고 있으니 가장 불평없이 견디는 아이에게 상을 많이 줄 거라고 말했다는 것. 그런데 아이들이 거의 고기를 먹지 못해 그게 안타깝다는 것 등등. “인생을 소풍이라 생각한다면 이 정도 시련은 반드시 약에 쓰일거야!” 경쾌하게 결론까지 내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의 용기와 의지,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입이 다 벌어졌다. 뭔가 위로하려던 내 마음이 차라리 부끄러웠던 것이다. 이튿날 나는 내 아이와 그녀의 아이들을 태우고 갈비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이건 잘 먹는 프로젝트야! 많이 먹으면 살쪄서 나뻐. 그렇지만 오늘은 그냥 맛있게 먹고 내일 다시 가난 프로젝트로 들어가자!” 친구와 나는 의미있는 웃음을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가난 프로젝트가 뭐야?” “그거 멋지게 사는법 배우는 거야!” 말을 해놓고나니 나자신도 좀 웃으웠지만 나는 이 시대 너무 잘 먹어 비만으로 가는 아이들에게 진정 ‘가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친구의 아이들에겐 한달에 두 번 정도 ‘잘 먹는 프로그램’을 계속 시행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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