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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 전, 부모님 몰래 치른 대학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합격통지서가 날아오던 날, 엄마는 하얗게 바랜 얼굴로 가만히 내 얼굴만 바라보셨다. 집안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대학에 가겠다고 졸랐다. 그러나 처량하게 바닥을 드러낸 쌀독, 연달아 날아드는 농협빚 독촉장, 철모르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진학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작은 사무실에 취직해 7년 동안 근무했다. 알뜰하게 돈을 모아서 동생들 학비도 대고 결혼도 했다. 어느새 아줌마가 됐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갈증, 예전에 못했던 공부에 미련이 남아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대학공부를 하게 됐다고. 전화를 받은 엄마가 바쁜 농사일도 뒤로 하고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내 손을 잡은 엄마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그리곤 "내가 너 대학 못 보낸 게 얼마나 한이 됐는지 아니! 이제 니가 하고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구나.” 그러시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등록금에 보태라고 쌈지돈을 내놓으셨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사코 말렸지만 엄마의 고집을 꺽을 수가 없었다. 나역시 넉넉지 않은 살림에 내 욕심으로 덜컥 등록을 해놓고는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엄마의 돈을 받았다. 등록금은 엄마가 주셨다는 말을 하고싶었던 것이다. 그 날 밤 엄마는 내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딸네 집에서 주무셨다. 결혼한지 10년이 지나도록 우리집에서 주무시기는커녕 따뜻한 밥 한공기 대접에도 미안해하시던 엄마가 그날 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편하게 잠자리에 드셨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머리맡에서 나는 전공서적을 펼쳐놓고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식에는 꼭 엄마에게 학사모를 씌어드리겠다고 다짐하며. 그러나 자식은 효도를 하려해도 부모가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졸업을 한달 여 앞둔 어느 날 쓰러진 엄마는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시고 말았다. 공부하는 동안 수시로 밑반찬을 날라주셨고, 방학 때 학교수업이 있을 때는 아예 유모처럼 두 아이를 맡아주신 엄마. 공부도 못시킨 딸자식이 시집가서 신랑 잘만나 새공부한다며 자랑을 하고 다니신 엄마. 나중에 들었다. 내 등록금으로 주신 돈이 엄마가 환갑 때 받은 반지를 판 것이라는 것을. 부모에게 다하지 못한 효도는 내리내리 갚는다고 한다. 나역시 엄마에게 못다한 은혜 자식들을 잘 키움으로써 보답하려는데, 그 은혜에 근접이나 하려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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