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빵집에 한 청년이 매일 와서 식빵을 사 가지고 갔다.
그 청년의 얼굴은 약간 창백해 건강이 안 좋아보였고, 가난해서인지 항상 싼 식빵만 사 갔다.
그러던 중 빵가게 여주인은 매일 오는 그 청년을 기억하게 되었고 허약해보이는 그 청년이 영양가 없는 싼 빵만 사 먹는 것이 공연히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청년의 고뇌에 찬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남았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빵에 버터를 듬뿍 넣어서 그 청년에게 팔았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청년은 빵가게에 와서 여주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 마침내는 좌절한 표정으로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는 도시 설계전에 응모하기 위한 설계도의 마무리 손질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설계도의 지우개로 사용하기 위해 식빵을 사 갔는데, 이제 그 빵 때문에 설계도를 다 망쳤다는 것이다.
여주인은 정말 순수한 사랑으로 그 청년을 도와주고 싶어서 버터를 넣었지만 결국 그 청년에게 엄청난 손해만 끼쳤다. 자신의 순수했던 마음이 그런 비극을 초래한 것을 생각하니 여인은 정말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청년은 청년대로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했고, 여인은 ‘좋은 연민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끼며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사랑이란 내가 무엇을 해주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유익한 보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해없는 사랑은 일을 그르칠 수 있는 많은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동정이나 연민이 좋은 감정이긴 하나 때로는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 도와주는 사람의 마음이 순수했다 해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인은어떻허든 청년에게만은 보상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청년은 그런 그녀의 호의를 냉정히 거절했고, 또 그건 돈으로 보상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가슴에 꽂힌 비수를 뽑지도 못한 채 여인은 떠났다. 세상을 모질고 악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며. 그래도 여인은 마음을 다해 청년의 재기를 기원했고, 마침내 4년 뒤 청년의 입상소식을 신문을 통해 보았다. 그리고 청년의 입상소감에 ‘몇 번의 좌절이 더 성숙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한 어느 한 여인을 찾는다’는 후기가 있었지만 여인은 그것을 다 읽지 못했다. 마음의 업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여인은 이제 정말 홀가분한 기분으로, 다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의 길을 갔다.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었지만 생의 회환으로 깊이 멍든 저 아름다운 가을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