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탕은 물론 온천이나 찜질방, 사우나, 해수탕 등은 우리 생활 속에 깊게 파고든 목욕문화입니다.  요즘은 호화로운 시설에 각종 문화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어 모임이나 데이트 장소가 찜질방이 될 만큼 목욕문화가 생활이 돼버렸고, 덕분에 큰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몸에 있는 때를 벗겨내는 차원을 넘어 휴식과 오락, 그리고 문화적인 교류도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되었지요.

그 옛날, 명절이나 특별한 날을 앞두고 엄마 손에 질질 끌려 피부가 빨개지도록 때를 밀어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울며불며 아프다고 사정을 해도 매섭게 붙들어 정성으로 닦아내 주시던 어머니였죠. 그때의 대중탕은 뜨겁고 사람 많고 답답해서 정말 가기가 싫은 곳이었고, 어머니는 본전을 뺀다고 하두 때를 오래 밀어 목욕탕을 나서면 손이 퉁퉁 불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참 그리운 추억이기도 하지요.

세상에서 목욕탕만큼 평등한 곳이 있을까 싶습니다.  값비싼 옷이나 낡은 옷이나 평소에 걸치고 다니던 옷가지를 훌훌 다 벗어버리고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많이 배운 자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목욕탕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좀 난감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웃을 만나는 정도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아이의 담임선생님이나 조금 체면을 차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처럼 쑥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서로의 벗은 몸을 바라보기도 좀 민망하고, 등을 밀어주겠다고 하기도 어색해서 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어집니다.
요즘은 웰빙 시대라 집에서 하지 못하는 반신욕을 목욕탕에서나마 실컷 하려고 온탕에 상반신을 내놓고 오래도록 앉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딱히 할 말도 없는 어려운 사이끼리 상반신을 내놓은 채 서로 탕 안에서 마주 앉아있는 다는 것은 때로 고역이어서 그 좋다는 반신욕도 하는 둥 마는 둥 나오게 됩니다. 서로 벌거벗고 앉아있으면 모두가 다 마찬가지 인데 우린 왜 목욕탕에서 까지 체면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일까요. 아마 마음의 때가 많이 끼여있는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몸에 붙은 때는 열심히 벗겨내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는 잘 벗겨내질 않나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생명을 이루는데 육체의 때를 벗기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니 우리 마음들이 어서 목욕탕 좀 데려다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 저 맑은 하늘아래서 우리 마음이 모두 투명해지도록, 그래서 목욕탕에서 누구를 만나도 서로가 해맑게 웃을 수 있도록 마음의 때를 닦아봅시다. 어린아이처럼 티없이 웃으며 첨벙첨벙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같은 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