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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눈도 없이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 될 거라고 한다. 그래도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않은 서민의 어깨는 움츠러들고, 세모를 맞는 거리의 바람은 가슴 속까지 시리기만 하다. 취직을 못해 빌빌 댄지 3년.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대학까지 보내주신 부모님 뵐 용기가 없이 여전히 ‘공부합네～’하는 핑계로 서울 변두리 한 구석에서 투잡스 알바(아르바이트 두곳)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고 있다. 크게 잘나지도, 뛰어난 실력도, 노가다로 뛰어들 만큼 무식한 용기도 없는 나는 어떻해든 괜찮은 직장을 얻어서 번듯하게 금의환향하고 싶어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원에 등록을 했다. 먼저 영어는 필수. 배달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영어단어를 달달 외며 제법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핸드폰 밧데리가 나가 학원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거는데, 지저분한 파카를 입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사발면 두 개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전화부스 쪽으로 왔다. 틀림없이 노숙자 걸인 같았다. 귀찮아진 나는 얼른 할아버지를 피해 학원으로 들어갔다. 한 이십 분쯤 지났을까. 친구와 커피를 마시려고 다시 밖으로 나갔더니 학원 앞 병원 계단에서 조금 전에 보았던 할아버지가 사발면을 먹고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차가워 귓등이 깨질 것 같았는데 거리에서 떨리는 손으로 사발면을 드시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니 웬지 마음이 찡하고 안돼 보였다. 그때 한 젊은 아저씨가 씩씩거리며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아마도 병원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인 듯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라면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로 툭툭 차며 "야, 저리로 가. 저리로 가란 말야" 하고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의 발길질에 밀려 라면국물이 조금씩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그 아저씨에게 왜 그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비겁하게도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와서도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대항하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뭔가 출세를 해보겠다고 되지도 않는 영어를 쏼라거리고 있는 내 현실이 싫었다. ‘그 노인은 어떤 젊은 날을 보냈기에 그런 노년을 맞는 것일까….’ ‘그렇게라도 인간은 살아있고 싶은 것일까…’ ‘배움은 무엇이며 출세는 또 어떤 것이란 말인가 ….’ 기어이 나는 수업을 마치기도 전에 가방을 챙겨 학원을 나왔다. 그런데 아까 그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계단에는 미처 다 먹지 못한 사발면 그릇이 엎어져 있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 것일까….’ - 이번 주 목요신문 '마음의 호수'에 실린 수필작품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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